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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올해 14회를 맞이하는 대전창작희곡공모전은 코로나로 위축된 공연계를 향한 극작가들의 열망을 대변하듯 총 92편이 응모되며 공모전 개최 이래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양적 팽창이 언제나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창작극의 미래에 희망을 품어봅니다.
예심을 거쳐 총 열여섯 편의 작품이 본심에서 논의되었고 그 가운데 여섯 편의 우수한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헤엄치는 물고기>는 무리 없이 흐르는 서사, 깔끔한 앤딩이 돋보였으나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물고기로 변해가는 설정이 비슷한 설정의 다른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있어 당선권에 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아이코닉>은 단단한 필력으로 흥미진진하게 서사를 끌어가는 힘, 인물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좋았으나 그런 안정감 이면에 올드한 느낌, 다소 극단적인 앤딩 등은 아쉬움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최종심에서 가장 오랜 시간 심도 있게 논의된 작품은 <광인의 정의>였습니다. 이 작품은 연극성과 문학성이 고루 뛰어난 데다 메타포를 촘촘하게 이어나가는 솜씨가 탁월했습니다.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극적 재미는 차츰 드러나는 인물의 서사로 인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다만 이 작품의 강점이라 생각되었던 문학적 대사들이 여러 시인과 극작가의 작품에서 차용되었다는 점, 더구나 인용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당선작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사위원 전원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합니다.
당선권에 든 세 편의 작품 가운데 우수상은 <불면의 밤>에게 돌아갔습니다. 불안과 고독으로 잠 못 이루는 현대인의 모습을 캐릭터가 주는 힘만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이면서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를 잃지 않는 대단히 노련한 작품입니다. 다만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죽음, 곧 불면에서의 해방과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 사이에서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일말의 의구심이 듭니다. 최우수상 수상작은 <불의 고리>입니다. 별다른 연결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는 굳건하다고 믿는 지구의 흔들림에 우리들의 보잘것없는 삶이 받게 되는 ‘여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추었고 인물과 대사를 다루는 솜씨도 빼어나지만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형식이라는 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다소 과장되게 삽입되었다는 견해로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럼에도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작가의 필력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대상 수상작 <검은 얼룩>은 큰 논의가 필요 없었던 작품입니다. 인간 죄의식에 대한 통찰이 매우 돋보이는 수작으로 흠잡을 곳 없이 흐르는 서사, 고결함과 저속함의 줄다리기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등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단지 세 명의 인물만으로 그런 서사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합니다. 이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검은 얼룩>을 제14회 대전창작희곡공모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합니다.
이번 공모 심사는 매우 공정한 절차를 거쳐 블라인드로 진행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심사위원의 개인적 취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선권에 들지 못한 작품 가운데 심사위원을 특별히 아쉽게 만드는 작품도 있었고 예술성은 다소 부족해도 공연으로 만들면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은 작품도 눈에 띄었습니다. 당선되지 못한 작가님들께 위로보다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응모해주신 모든 작가님들의 건필을 기원하며 수상 작가님들께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냅니다.